경기천년 총론2 (39)경기도의 지정학

경기도의 공간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개의 키워드가 있다. 첫째 왕도 한양이다. 둘째 분단과 통일이다. 셋째 유라시아 대륙이다. 경기도는 서해안을 끼고 있고 그 건너에 중국이 자리 잡고 있다. 황해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가면 유라시아 대륙 전체와 육로로 연결된다. 경기도는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이다.



▶ 경기도는 한양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경기도는 왕도 한양을 지키는 보루이다. 그래서 경기도는 다른 지역보다 전투가 많았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의 전투 현장이 경기도 강화도와 김포이다. 1894년 청일전쟁이 시작된 곳도 경기도 안산시 풍도 앞바다이다. 근대 이후 조선을 침략하는 외적이 처음 침략한 곳이 경기도인 것은 경기도가 한양을 외곽에서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와 미국 군대를 막아 낸 곳이 경기도이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이 제한전을 펼쳤기에 조선 군대가 초반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막아 낼 수 있었지만, 19세기 중엽 경기도는 왕도 한양을 지키는 보루라는 당대의 역사적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경기도가 조선왕조를 지키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한 또 하나의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 영화 「남한산성」이 그리고 있는 남한산성

얼마 전 영화 「남한산성」이 상영되었다. 385만 명이 관람한 영화 「남한산성」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병자호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병자호란의 패전, 삼전도에서의 치욕적인 굴복은 17세기 중반의 역사적 사건이지만 지금까지도 한국인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고, 21세기 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가 17세기 병자호란 당시와 비슷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완성도 높은 영화이다. 역사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여 작가와 감독이 상상력을 보태어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그래서 역사 영화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그려졌다고 해서 역사를 왜곡하였다고 비판할 수 없다. 필자는 역사 영화 한편이 역사교과서보다 더 훌륭한 역사교과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입장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수업 시간에 텍스트로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과 그 주변에서 펼쳐진 조선 군대와 청 군대와의 전투를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는 근왕군이 왕의 출병 명령에도 불구하고 출병하지 않았고 도리어 명령을 전달하러 온 서달쇠를 죽이려 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당시 조선 군대가 이러하였기에 병자호란에서 청 군대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또 영화의 후반부에서 남한산성이 청의 공격을 받아 함락 직전의 상황까지 간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 병자호란 당시 패전 군인이라 해서 오합지졸로 기억해서 되겠는가

당시 역사적 실상은 이와 달랐다. 근왕군은 왕의 명령을 받은 후 신속하게 출동하여 청군과 전투를 펼쳤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입성한 것은 12월 14일이다. 이 날 부터 1월 7일까지 전국의 근왕군은 청군과 9차례의 교전하였다. 광교산 전투에서는 승리하기도 하였다. 왕의 명령을 받고도 출병하지 않는 군대라면 그것은 군대라 할 수 없다. 당시 조선의 군대가 청군을 막아내지 못하였지만 목숨이 아까워 출병하지 않을 정도의 군대는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전투를 그린 영화 「명량」의 마지막 부분에 병사들이 그들의 싸움을 후손들이 알아주겠냐는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마도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후손인 우리가 당신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마음 속으로 대답하였을 것이다. 승전한 전쟁의 병사만 훌륭한 군인으로 기억할 것인가. 패전한 군대라 하더라도 왕의 명령을 받고 바로 출동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장병들도 훌륭한 장병들이다. 우리가 병자호란에 참전한 군인들을 죽음이 두려워 출동하지 않은 비겁한 오합지졸로 기억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함락당하지 않았다

또 남한산성은 청 군대의 공격으로 함락당한 바가 없다. 조선 군대는 청군의 남한산성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남한산성이 평지성이었으면 청군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가파른 산세 위에 축성된 산성이기에 외부 군대가 산성을 공격하기 어려웠다.

청 군대의 남한산성 공략을 막아냈다는 것은 병자호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대목이다. 비록 남한산성 내부가 벌봉보다 낮은 곳이어서 청군의 홍이포 공격을 받았지만 외부의 공격에 오래 버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내부가 평지이고 물이 풍부하였다. 당시 남한산성 내에는 50일분의 식량만 비축되어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강화도로 피신할 계획이었기에 남한산성에서 농성할 경우를 대비하지 못한 결과이다.

당시 남한산성에 식량과 화약을 충분히 비축하였다면 전쟁은 47일 만에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청 군대의 사정이 조선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주 공격 목표가 명이었기 때문이다.

또 정해은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조선에 천연두가 유행하였고 청 황제와 청 군대가 이를 두려워하였기에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군이 조금 더 버티었다면 우리가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청과 화약을 맺었고, 병자호란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조와 당시 집권 세력, 군 지휘자의 가장 큰 과오는 이같은 전략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점이다.

병자호란은 치욕적인 전쟁이지만 남한산성은 청군에 함락당하지도 않았다. 남한산성이 가지는 요새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였다면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에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과 그 일대에서 싸운 군사들의 실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 분단의 현장, 통일의 길목 경기도

경기도는 분단되었을 때 이로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남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들어섰을 때 통일의 길목이 되었고, 경기북부 지역은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다시 남북 간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를 단호한 원칙과 부드러운 대화를 병행하여 해결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꿈은 통일이다. 장차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경기도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올 것이고, 이때 북한 주민은 경기도로 가장 많이 이주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기도가 북한과 연접해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경기도로 대거 이주할 경우 경기도는 주택, 일자리, 교육, 복지, 치안 문제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단시대에 경기도가 분단의 고통을 한 몸으로 껴안고 왔듯이, 통일 이후에도 통일이 가져 올 부작용을 다른 광역 자치단체보다 더 많이 떠안고 가야할 것이다.

동시에 경기도가 북한 땅과 연결되었다는 지리적 이점을 누릴 것이다. 북한으로의 진출, DMZ 활용, 유라시아와 연결되는 철도와 고속도로의 출발 지점으로서의 이점이 그것이다. 경기도의 미래 변수 하나가 통일이다.



▶ 유라시아로 나가는 전진 기지 경기도

한국은 전통적으로 아시아 대륙 국가의 일원이었다. 중국과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비교적 안정적인 국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45년 분단 이후 북쪽 땅이 막혀 버리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대륙 국가였던 한국은 섬나라가 아닌 섬나라가 되었다. 대륙으로의 진출이 막혔기에 한국은 선택의 여지없이 동진정책을 실시하여 일본과 미국으로 진출하였고 해양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1990년대 유라시아 대륙 정세가 급변하였다. 1990년 한국과 소련의 국교가 체결되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하였고, 1992년 한국과 중국 간의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이제 북한을 제외하고 한국이 대륙으로 복귀하는데 장애 요인은 모두 사라진 것이다. 한국의 대외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른 지는 오래되었다. 중국이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된 것이다. 지금 한국과 중국은 사드문제로 인해 갈등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계속 갈등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이 해양국가의 일원이었을 때 경기도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한국의 대외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았다. 바다로 진출하는 데는 부산항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되면서 서해안을 끼고 있고 중국과의 가장 짧은 항로를 가지고 있는 평택항의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한국 내에서 경기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 유럽 수출입 화물의 항로는 주로 선편을 이용하여 인도양을 돌아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먼 바닷길을 이용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중국 동해안에서 중국 서부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중국횡단철도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지금 이 철도를 이용하여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평택 항에서 배를 이용하여 롄윈강 항까지 가서 중국횡단철도와 바로 연결할 수 있다. 중국횡단철도를 이용한다면 유럽까지 화물을 운송하는데 거리도 짧고 시간도 단축시켜 주기에 유리한 점이 많다.

이렇게 되면 경기도는 대 중국 교역의 중심기지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나아가는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이다. 경기도의 미래에 유라시아대륙이 열려있다.

강진갑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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