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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내과 의사인 필자가 암환자나 가족들에게 환자분의 암 병기가 4기라고 설명하면 ‘말기인가요?’ 라는 반문을 듣게 된다.

이 말은 4기이면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것 아니냐는 큰 실망을 내포하고 있다. 암이 대개 하나의 장기(폐, 유방, 위, 간 등; 원발 장기라고 함)에서 발생하여 진행함에 따라 혈관이나 임파관 흐름을 타고 다른 원격 장기에 퍼져 나가는 것을 전이라고 하며, 진단 시에 원격전이가 있으면 4기로 분류한다. 그러나 4기암(전이암)이 말기암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이암의 치료 원칙은 항암제나 표적 치료제와 같은 약제의 전신적인 투여다.

눈에 보이는 전이 병변을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로 제거해도 다른 부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전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소치료는 특수한 상황 외에는 효과가 없다.

최근 10여년간 종양학 영역에서 암환자, 특히 전이암 환자의 생존율을 극적으로 향상시킨 약제들은 표적치료제와 면역치료제(면역 체크포인트 억제제)다.

표적치료제는 특정 발암 유전자를 공격해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약제로 폐선암에서 EGFR 돌연변이 억제제인 이레사, 타세바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의 평균 생존기간은 진단 후 12개월에 불과했지만 EGFR 돌연변이 환자들에게 이레사와 타세바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생존율이 배 이상 향상됐다.

유방암에서 표적치료제의 발전은 더 드라마틱하다.

10여년전에 HER2 증폭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허셉틴이 처음 개발되어 HER2 양성인 전이성 유방암의 평균 생존기간을 20개월에서 25개월 정도로 향상시켰고, 그 후 허셉틴 내성 유방암에 캐싸일라가 개발되어 생존 기간을 더 연장했으며, 2015년에 새로운 HER2 억제제인 퍼제타가 HER2양성 유방암의 생존기간을 거의 5년 가까이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3상 임상 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면역치료제(면역 체크포인트 억제제)는 최근 종양학 약제 개발에 있어서 떠오르는 별이라고 할 수 있다.

암세포는 인체내의 면역제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마구 증식하게 된다. 일례로 면역체크포인트인 PD-1/PDL-1 신호전달 경로가 활성화되면 암세포를 죽이는 인체내의 T 세포가 작용하지 못해 암이 증식하는 것이다. 이에 개발된 약제가 PD-1억제제인 옵디보와 키트루다이다. 이 약제들은 1차 약제에 실패한 전이성 흑색종과 비소세포폐암에서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연장해 2014년과 2015년에 미국 식약처(FDA)에서 혁신약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PD-1/PD-L1 억제제는 두경부암, 유방암, 난소암, 신장암, 간암, 방광암, 임파종 등에도 효과가 있으며, 향후 더 많은 암종으로 확대되어 많은 전이암 환자들의 생존율을 향상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최근 10여년간 표적치료제와 면역치료제(면역 체크포인트 억제제)는 전이암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으며 또 다른 표적치료제나 면역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요컨대, 필자는 전이암은 말기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며, 전이암 환자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를 권한다.

문용화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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