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진료·담당인구 출동 전국 최다… 올 상반기 신고전화 '14초마다 1건'
과중한 업무량에 마음 지쳐가지만 불이익 우려에 '참고 견디기' 일쑤
전문가 "1년 1~2회 상담 받게 하고 정신 문제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야"

경기지역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29일 오후 경기지역 한 소방관이 출동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노민규기자
경기지역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29일 오후 경기지역 한 소방관이 출동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노민규기자

경기지역 소방관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우울증 진료를 받고 있다. 타 시·도에 비해 넓은 관리 구역과 압도적인 출동 건수 탓으로 풀이된다.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사회적 낙인과 미비한 정책 등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국에서 가장 바쁜 경기소방 ‘참고 견디는’ 그들= 지난해 국정감사 제출된 ‘2016~2020년 소방·경찰공무원 특정상병코드별 진료 원인’에 따르면 경기지역 소방공무원 가운데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127명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경기소방은 다른 지역에 비해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감당한다. 가까운 서울과 비교하면 경기도 면적은 1만185.6㎢로 605.52㎢인 서울보다 16.8배가량 넓다. 또한 경기소방 1인당 담당 인구는 1천227명에 달한다. 전국 평균 807명보다 1.5배 정도 많은 수치다.

그뿐만 아니라 화재와 구조·구급 활동 건수도 제일 높다.

지난해 경기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8천169건이다. 전국 화재(3만6천266건) 22%를 차지한다. 2020년에는 전국 화재(3만8천659) 23%인 8천920건 화재가 경기지역에서 났다. 구조·구급 활동과 생활안전활동 역시 전국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 출동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경기소방에는 14초마다 1건씩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들어온 경기도 내 신고는 56만7천11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4만4천262건) 대비 27.6% 늘었다. 하루 평균 6천300건이 접수된 셈이다.

화재, 구조, 구급 등 현장출동 관련 신고가 23만5천585건(41.5%)으로 대부분이었다. 절반 가까운 현장 출동이 접수된 상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1분에 1번씩은 경기소방이 출동한 것이다.

소방관 A씨는 "어떤 날은 밥 먹고 잠자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며 "특히 지역 특성상 거리가 먼 문제와 동시다발적 신고 접수로 현장 대응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바쁜 상황에 힘들다는 까닭으로 업무에서 빠진다면 나머지 과중한 출동 등이 모두 동료 소방관에게 간다"며 "이 역시 여러 고통을 참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음 아픈 소방관 기댈 곳도 없다…치료 지원 부족 목소리=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의 ‘2017~2022년 경기도 소방공무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및 상담 실적’에 따르면 이 기간 이뤄진 진료 또는 상담은 모두 6천829건에 달한다.

2017년 633건에서 2018년 1천59건, 2019년 1천654건, 2020년 1천857건, 2021년 1천626건 등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경기지역 소방관이 모두 1만1천448명인 것을 고려하면 10명 가운데 1~2명 만 진료를 받는 실정이다.

현장 소방관들은 이 같은 문제 원인으로 ‘환자 낙인’, ‘승진 불이익 우려’ 등을 꼽았다.

소방관 B씨는 "대형 화재나 재난, 사고 현장 등 출동 후에 심각한 정신 타격이 와 굉장히 힘들지만, 이를 까닭으로 치료받으러 가면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걱정된다"며 "이러한 조직 문화가 이미 자리하고 있어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기보다 참고 버티자는 인식이 강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2016~2020년 전국 소방관 정신 건강 치료 현황을 보면 우울증과 PTSD를 호소한 소방관은 각각 1만527명, 1만744명이다. 그러나 실제 치료로 이어진 경우는 우울증 2천596명, PTSD 249명에 그쳤다.

소방청은 어려움을 겪는 소방관을 돕고자 전문상담가가 각 소방서로 방문하는 ‘찾아가는 상담실’ 등을 지원하지만, 실제 현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찾아가는 상담 경우 ‘익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데다 잦은 상담이 오히려 트라우마 깨우는 역효과를 낸다는 것.

또한 경찰 경우 마음동행센터를 통해 심리 지원을 펼치고 있지만, 소방은 센터조차 갖추지 않아 경찰 센터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관 C씨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직원에게 관심을 주는 것은 좋지만, 잦은 상담은 환자라는 인식을 강하게 해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인식개선과 거점 치료기관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민범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내는 물론 선진국에서도 정신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상황에 공무를 수행하는 소방관이라면 더욱 어려움이 클 수 있다"며 "꾸준한 홍보활동을 통해 정신적 문제의 인식 개선은 물론, 적극적인 치료로 이어지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과도한 업무, 조직문화 등 문제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1년에 1~2회 의무적 상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심신수련원과 같은 심리 치료 전담 기관을 거점별로 설치해 근거리 치료를 병행토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양효원·김도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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