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지지대 고개 인근 카페에서 ‘지지현(遲〃峴)’ 표석을 발견했다. 정조 임금의 원행과 관련한 문화재로 수원 경계의 첫머리에 서 있었던 표석이다. 이에 문화재청에 매장문화재 발견 신고를 하였고, 문화재청은 도난의 우려가 있으니 박물관에 이송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4월 7일 수원화성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왔다.

지지현 표석의 출현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조는 1796년(정조 20) 원행의 거둥길에 경계를 알리는 표석을 세우라는 하교를 내렸다. 이에 수원 경계의 ‘지지현’부터 현륭원 ‘능원소 동구‘까지 18개의 표석을 세웠다. 이와 더불어 11개 장승과 정자 4개를 함께 세워 길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했다.

이로써 수원은 왕명에 의해 표석과 장승이 세워진 전국에서 유일한 도시가 되었다. 왕명으로 수원부 읍치를 옮기고 화성을 건설하면서 수원은 새로운 도시로 거듭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을 이름과 표석, 장승까지 정조의 어명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성안 마을 이름조차 화성과 관련한 이름이다. 장안문에서 장안동이 나왔고, 신풍루에서 신풍동을 따왔으며 매향교에서 매향동이라 했다. 남수문과 북수문에서 북수동과 남수동이 나왔고, 연무대에서 연무동이라 했으니 수원은 정조 임금이 만든 도시라 해도 틀림이 없다. 현재 18개 표석 가운데 ‘괴목정교’, ‘상유천’, ‘하유천’ 등 3개 표석은 수원에 있고, ‘안녕리’, ‘만년제’ 등 2개 표석은 화성시에 남아 있다. 이제 새로 발견된 ‘지지현’ 표석을 포함해 6개로 늘었다.

지지현은 북쪽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는 첫 고개로 ‘지지대 고개’로 널리 알려져 있다. 1789년 수원 화산에 현륭원(顯隆園)을 옮겨 봉안하고 매년마다 참배한 정조의 효성이 어린 곳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에 이르면 행차를 멈추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기 때문이다. 원래 ‘사근현(沙斤峴)’이던 고개 이름을 정조는 1795년(을묘년)에 ‘미륵현(彌勒峴)’으로 고쳤다가 다시 이듬해 1796년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치면서 표석을 해 세웠다. 그리고 그해 돌을 쌓아 ‘지지대(遲〃臺)’를 만들었다. 이로써 돈대와 고개가 모두 ‘지지(遲遲)’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지지대’와 ‘지지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지현’보다 ‘지지대 고개’로 불렀다. 지지대가 있는 고개라는 의미와 더불어 순조 때 높이 세운 ‘지지대비’와 그 비각을 보고 고개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화성은 성곽뿐 아니라 성안의 생태적 모습을 복원하는 중이다. 북지(北池)와 남지(南池)를 시작으로 향후 상동지(上東池)와 하동지(下東池)까지 완성되면 성안의 풍경이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화성은 한국성곽의 꽃이라 일컫는다. 이는 성곽만이 아니라 성안 마을의 안온하고 쾌적한 환경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더욱이 수원은 장승의 땅이었다. 지지대 장승으로부터 현륭원 원소까지 40여 리, 그 길을 따라 장승을 세웠으니 모두 11곳이다. 지지대, 일용리, 기하동, 상유천, 재간현(만화현), 건장동, 하유천, 응봉, 유첨현, 안녕리, 능원소 등이다. 전국에서 이렇게 정확하고 많은 장승 기록이 있는 땅도 없다. 하물며 정조 임금의 어명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랴. 현재 세류동 마을주민들이 세운 상유천 장승이 서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미망 속에 장승을 세우는 것을 우상숭배로 ㅤㅍㅖㅁ훼하기도 하지만 장승은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 경계와 거리를 알리는 표식의 기능이 컸다. 주자학을 숭상하는 조선의 국왕 정조도 장승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임금의 거둥길에 18개의 표석을 다시 세우고, 11개의 장승과 정자를 만들어 걷고 싶은 수원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화성을 건설한 목적과 이유이기 때문이다.

능행차는 이들 표석과 장승 및 정자가 함께 있는 모습이어야 제 멋일 것이다. 이에 화성문화제의 능행차를 격년제로 시행할 필요도 있다. 한 해는 제대로 된 복식과 의장을 통한 역사문화적 격식을 갖춘 행사가 되고, 또 다른 해는 시민들이 구경꾼이 아니라 행사 참여자가 되는 명랑한 시민축제로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장승이 서 있던 마을마다 장승 만들기와 장승제를 축제로 만들고, 정자를 쉼터로 조성해 걷고 싶은 명실상부한 역사문화도시가 되도록 해야만 한다. 민선 8기를 맞아 ‘지지현’ 표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지지대 고개의 ‘지지대’를 다시 복원하여 명실상부한 지지대 고개를 만들어야 하고, ‘지지현’ 표석을 제자리에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과 숲이 아름다운 생태도시 수원의 건설은 정조의 어명이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지엄한 명령이 되어야 한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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