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밝힌 뒤 여러 자치단체들이 이 클러스터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자치단체들이 지역경제를 살리려고 기업을 유치하려는 것은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의 산업집적이론에서 시작된 클러스터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으로 꽃을 피웠다. 이후 세계 각국에 붐을 일으켰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곳 또한 적지 않다.

이탈리아의 경제 중심이자 세계적 패션도시 밀라노를 주도로 한 롬바르디아도 그렇게 클러스터를 시작했다. 관내에 운집한 전통의 화학, 의약품기업들을 기반으로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조성에 나섰다. 덕분에 이곳엔 이탈리아 바이오산업의 60%가 몰렸고 연구소도 다수 들어섰다.

그렇지만 신약개발보다는 중간재를 활용한 완제의약품이나 카피약품 제조기지 성격만 굳혔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분사한 기업은 거의 없고 외국 다국적기업이나 대기업 자회사들만 들어섰다.

이탈리아 정부까지 지원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결국 롬바르디아는 실패한 클러스터로 머무르고 있다. OECD는 롬바르디아에 대해 리서치와 혁신, 대학 등 여러 분야의 역량 증진이 필요하며, 이곳 대학들이 ICT분야에서 진일보했다지만 거버넌스 모델이 잘못됐고 전통적 하이테크에 과도하게 집중됐다고 평가했다.

이 사례는 우리가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에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하며, 또 누가 어떤 자세로 주도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

산업 클러스터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기업의 전략과 경쟁을 위한 환경, 요소(투입)조건, 수요조건, 관련 산업 및 지원산업 등을 꼽았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넘어 세계 최고의 ICT 클러스터가 된 실리콘밸리의 성공사에서도 그런 점을 읽을 수 있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아이디어시장, 자본시장, 재능시장 등 세 시장을 갖춘 게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지금 대표적 먹거리이자 국가전략산업인 반도체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기로에 섰다. ‘제조중국 25 전략’으로 맹추격하는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향후 5년 내 거의 좁혀질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의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이 부문의 초격차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시급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란 목표까지 함께 달성하려는 포석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업과 시장의 선택이다.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혁신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투자해야 하고,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야 하며, 이들의 투자와 연구개발을 전폭 지원할 투자자들이 받쳐줘야 한다.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갖춘 용인시는 이런 조건들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최고의 적지이다. 국내 반도체 양사와 전·후공정 반도체 장비업체들을 연결하는 중심에 있고, 다수의 기업들이 들어설 공간도 충분하다. 특히 반도체 기업 집적화에 필요한 기업 간 협업이나 고급인력 수급, 인프라 활용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여건을 갖췄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동안 대외적 언급을 자제한 것은 과열된 지자체의 유치 열기가 자칫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꺾거나 시장의 합리적 선택에 그릇된 영향을 미쳐선 곤란하다는 판단에서다.

국가적 과제인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결정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적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시급한 국가적 과제인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백군기 용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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