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

지난 2016년. 지금 이 정도의 시간. 당시 비선 실세로 온 나라가 들끓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기 이른다. 그러나 이후에도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 관련 추가 의혹은 이어지고 분노한 민심은 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모든 때의 뒤늦음을 감지한 청와대는 당혹감 속에서 여론동향을 예의주시하기에 이르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다. 불어날 대로 불어난 온갖 억측과 거짓말은 이미 저만큼 도망가 있었지만 방어와 변명의 끈을 묶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다. 급기야 당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최순실씨 관련 청와대 차원의 후속조치가 있는지에 대해 짧은 대답을 했다.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

이렇게 따로 드릴 말씀이 없었던 까닭은 단 하나. 이미 청와대 내부에서 조차 전날 최순실씨가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나 대북 접촉 정보까지 최씨에게 건네졌다는 추가 의혹으로 최순실씨에 대한 많은 의구심이 퍼지는 상황이 곤혹을 넘어선 이유다. 오죽하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거나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라는 반응이 나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청와대와 여당에서 대굴대굴됐다. 그럼에도 얘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됐고 결과는 모두가 현실을 냉정하게 경험해야 했으며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 역시 여성의 고령 나이에도 사계절을 몇 번씩 고스란히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결국 얘기는 민심에 당할 정권이나 당사자가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당시에도 민심 달래기에 나선 청와대는 탄핵론까지 제기되는 등 분노한 민심 동향에 그만 주저앉았다. 그렇게 민심은 물결 따라 거세지기도 잠잠하기도 한 보이지 않는 칼로 남아 있다. 이번 추석 밥상 민심을 생각했다. 비단 추석명절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밥상에서의 정치얘기는 이미 금도가 된지 오래. 가족 간에도 친구간에도 세대차이의 극명한 다름으로도 다툼이 두렵긴 마찬가지에서다. 정치평론의 근간이 되는 매체나 여론도 여야 모두가 절반씩 비슷했다는 평가를 내리기 이른다.

우선 경제에 고금리와 고물가 등 팍팍해진 살림살이 걱정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고. 그럼에도 여야는 경제와 민생을 해결해야 할 연휴 기간 동안에도 서로를 헐뜯고 있었고 지금도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국민의힘 말대로 오로지 당대표 한 사람을 위한 방탄과 이를 위한 정쟁에만 모든 당력을 집중했다는 말은 비단 보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도 민주당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국민 고통에 눈감은 불통의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는 주장도 이런 범주에서 멀지 않다. 문제는 조만간에 있을 총선이나 바로 코앞에 있는 서울의 한 지자체 선거의 결과가 중간민심 평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정쟁 대신 민생을 챙기겠다’는 어제의 결기 넘치는 말들과 입만 열면꺼내는 협치를 위한 포용과 배려의 자세도 민심을 살피는 워치탑의 상황과 멀지 않다. 다만 알 것 다 아는 국민들이 이런 거짓말들에 속을 것이란 철 없을 정치인들의 머리가 짧은 것인지 망각속에 사는 것인지는 자신없다. 순서대로 하면 지금의 정국은 ‘웬간히’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 정국은 변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악화 될 것이 뻔하다. 해결되지 않을 의문에서다.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과연 이재명 대표가 무죄 판결이라도 받은 것인가. 아니면 법원이 개딸에 굴복해 이런 결과를 초래한 사실인가 조차도 불분명하다. 그저 여야 공히 ‘아전인수’식 해석만 물고 물리는 형국이다.

추석명절 이 대표가 대통령에게 제안한 ‘민생 영수회담’에도 대통령실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라고 일축했다. 예상했던 대로 대통령실이 무반응을 보이면서 여당은 이런 이 대표의 제의가 복심이라는 결과로 단정하며 튕겨냈다. 민생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회복하려는 정략적 의도라는 얘기다. 민주당이 대통령과 거대 야당 대표가 민생을 위해 회동하는 의미를 폄하하느냐는 발끈함을 뒤로 하고라도 그 회담의 중요성을 일부러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민주당이 과연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정치 복원의 유일한 전제 조건처럼 밀어붙이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의문은 계속된다.

국회 연설에서 합리적인 말로 질타를 받지 않는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연휴 기간 국민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경제와 민생을 빨리 회복시켜달라는 것". 적당히 잘 맞는 말이다. 다만 "여야가 협치 정신으로 10월 국회의 문을 열 수 있길 기대한다" 는 말은 애매하기 이를 데 없고 하나마나 한 얘기다. 국회문은 이미 민주당 마음대로 되어가고 있음을 모르지 않아서다. 예상대로 홍익표 원내대표가 한술 더 뜨는 대목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공히 경제와 민생 얘기였지만 이미 위기에 빠져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 국민적 분노가 컸다는 얘기다. 말 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르고 생각도 다른 정치다.

분명한 것은 이 민심에 대한 해석이나 여야의 생각들이 평행선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고민이다. 여당이 생각할 때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 없고 그래서 정부에 비협조적이어서 국정이 발목을 잡혔다는 주장이나 민주당의 민심 이반을 이유로 지금의 정권에 대해 포기 상태로 건건히 물고만 있는 상태가 고쳐질 기미가 안 보인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는 이유로 추석명절에 만난 친구들의 정국에 여러 물음을 했다. 거기에 나는 이렇게 청와대식, 대통령실 식으로 대답했다. "특별히 혹은 따로 할 말이 없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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