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외국인에 대한 이중적 인식
'출신 국가' 차별응답 56.8%
정지윤 교수 "빈곤 국가 떠올리며
우리 스스로 반다문화 현상 조성"
美 한인들, 정치 참여로 권리 증진
윤인진 교수 "최후 단계는 정치력
투표율 높인다면 효과 얻을 것"
이자스민 "다문화 조기교육 필요
교사에게도 올바른 인식 심어줘야"

 

“우리 아이를 ‘잡종’이라고 불러서 너무 속상했어요.”

지난 2012년 중국에서 귀화한 정춘이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몇 개월 전 겪은 가슴 아픈 일을 떠올렸다. 그는 “듣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고 고개를 떨궜다.

정 씨는 “한국이 좋아 귀화했고 한국 사람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아 열심히 살고 있다”며 “단지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우리나라 외국인 정책의 목표는 상생을 핵심 가치로 이주민들이 자립하고 성장하는 사회적 토대를 조성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이주민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아직 ‘우리’가 아닌 ‘그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최근에는 특정 국가나 인종을 향한 차별과 혐오 정서가 높아지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중국 출신 귀화인 정춘이 씨가 중부일보 인권증진보도팀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중국 출신 귀화인 정춘이 씨가 중부일보 인권증진보도팀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주민은 2등 국민”… 잘못된 인식이 갈등 키운다

이주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인구 유입 요소가 됐지만, 인종과 문화가 다르다는 점에서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정부의 이민정책이 선진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에 비해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것도 이런 괴리감 때문이다.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모스크) 건립을 놓고 3년째 이어지는 갈등이 대표적이다. 무슬림 이주민들은 종교활동을 위해 북구 대현동 주택가의 땅을 매입하고 건축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생활권 침해, 문화적 이질감 등을 이유로 건립 철회를 요구했다.

주민 반발이 계속되자 대구 북구청은 지난해 2월 공사를 중단하고 부지 이전 등 중재안을 내놨다. 하지만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소송 끝에 지난달 공사를 재개했지만,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건립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에 걸려있는 사원 건립 반대 현수막.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슬람 사원 건립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에 걸려있는 사원 건립 반대 현수막.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주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표출됐다. 정부는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함락되자 한국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위협받는 아프가니스탄인 378명을 한국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월급 받으면서 자국 재건을 위해 일한 사람들을 협력자라는 명목으로 이송해야 하나”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알앤써치가 지난해 8월 23~25일 진행한 아프가니스탄 난민수용 찬반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답변이 31.4%로 찬성(27.3%)보다 많았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은 사회적 갈등 증가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21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주민 동료가 있는 국민 중 16.4%가 이주민 동료와 다투거나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주민 이웃과의 갈등 경험도 10.3%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이주민 동료나 이웃과의 다툼 및 갈등 여부 조사’ 당시 수치(6.9%)와 비교하면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외국인 주민.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외국인 주민.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주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출신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도 보였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서 이주 외국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이유를 물어본 결과 ‘출신 국가’로 인한 인종차별이 56.8%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어 능력(62.3%), 한국인이 아니라서(59.7%)에 이어 높은 수치였다.

조사에 참여한 한 이주민은 “‘백인은 좋은 사람이다’ 같은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은 한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에서 존재한다”며 “출신 국가에 따라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고 토로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큰 틀에서는 (이주민 정책에) 공감하면서도 이민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러한 인식 격차 때문에 이주민 정책이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범죄 증가… “반(反)다문화 현상 경계해야”

이주 외국인을 ‘2등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차별과 혐오범죄로도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한 비율은 68.4%로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당한 차별 유형을 보면 반말이나 욕, 조롱 등 언어적 비하(56.1%), 사생활 질문(46.9%), 불쾌한 시선(43.1%), 일터 불이익(37.4%) 순으로 높았다.

이주민이 받는 차별 형태 응답률을 정리한 그래프. 제작=황인권 기자
이주민이 받는 차별 형태 응답률을 정리한 그래프. 제작=황인권 기자

혐오범죄 빈도도 늘어났다. 지난 2월 발표한 ‘코로나19 이전-이후 혐오범죄 변화와 혐오범죄 폭력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의 44%는 이주 외국인이었다. 혐오범죄 빈도는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3년간 26건에 불과했으나, 코로나 발생 이후에는 2년간(2020~2021년) 33건으로 급증했다. 또 피해자가 외국인일 경우 가해자의 폭력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국제교류경영전공)는 “다문화라고 하면 주로 못사는 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우리 스스로 반(反)다문화 현상을 만든 것”이라며 “이주민들에게 대한민국화(和) 할 것을 강요할 게 아니라 이주민과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다문화 의식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문화 정책을 이끌어 가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주민들이 한국인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취업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이들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이주민들이) 우리와 똑같네’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주 외국인 권익 높이려면 정치참여로 영향력 키워야”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각종 차별과 혐오를 낳고 있지만, 이주민 사회는 부정적 인식을 인지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응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차별을 당한 이주민 중 20.2%가 대응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차별에 대응했다고 답한 사람은 10.9%에 불과했다.

이주민들이 차별에 대응하지 않은 이유를 정리한 그래프. 제작=황인권 기자
이주민들이 차별에 대응하지 않은 이유를 정리한 그래프. 제작=황인권 기자

차별에 대응하지 않은 이유(중복응답)로는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서’가 57.8%로 가장 높았고,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가 45.3%로 뒤를 이었다. 그밖에 ‘보복이 무서워서’ 23%, ‘공정하게 대응해줄 것 같지 않아서’가 18%를 기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주 외국인 사회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자신들의 권리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인진 교수는 미국 한인 사회를 예로 들며 정치력을 행사해 이주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이민 1세대는 주로 영주권을 취득하다 보니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얻었음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92년 LA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이 큰 피해를 본 이후 한인들은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시민권 취득을 선택했다.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을 선출하면서 정치권이 한인 사회에 관심을 가지도록 노력했고 그 결과 지난 202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한국계 의원을 4명이나 배출시켰다.

윤인진 교수는 “어느 나라든지 이주민이 권익을 증진하고 지위를 향상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는 정치력이다. 정치력을 가져야 사회 주류로 들어갈 수 있다”며 “이주민들이 모래알처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지만,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유권자 운동을 펼쳐 나간다면 투표율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018년 영국 지방선거에서는 한인회장 출신 하재성 씨가 한인들이 밀집해있는 런던 남부 뉴몰든 지역구 구의원에 당선됐다”며 “이처럼 이주민이 모여 사는 지역의 경우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발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숙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은 외국인 투표권 부여 범위를 영주권자(F-5)에서 결혼 이민자(F-6)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외국인 주민.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외국인 주민.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이 회장은 “대부분의 결혼 이민자들은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다문화가정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인으로 자라날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부여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정지윤 교수는 선거철마다 이주 외국인을 동원하면서 외국인의 목소리는 등한시하는 정치권의 태도를 꼬집었다.

정 교수는 “과거 새누리당이 이자스민 전 의원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줬는데, 국회의원 신분으로 의견을 내고 정책을 제안했지만 이를 실행할 정도의 결정권이나 힘은 없었다”며 “이주민을 표몰이에만 이용하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반영하고 제도를 만들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문화사회 대한민국… 함께 어울려야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

전문가들은 이주 외국인들의 정치참여 확대와 더불어 우리 사회 역시 외국인을 바라보는 인식을 개선해야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가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경숙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은 “일손이 부족한 농촌 지역에서는 외국인이 없으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고, 공장이나 건설 현장 등에서도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이 높다”며 “이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림으로써 외국인·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긍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이 이주민들을 포용해 준다면 그들도 한국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문가들은 이주 외국인들의 정치참여 확대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이주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왼쪽부터 윤인진 고려대 교수, 이경숙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전문가들은 이주 외국인들의 정치참여 확대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이주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왼쪽부터 윤인진 고려대 교수, 이경숙 한국이주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윤인진 교수는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일종의 혈통주의, 문화적 동질성을 자산으로 내세웠는데 앞으로는 다민족,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장점이나 혜택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외국인 정책이 제대로 공감받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춰 사회 인식이 변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주민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은 ‘교육’에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국내 인구 대비 외국인 수가 4%를 넘어섰고 귀화를 선택한 외국인까지 합하면 한국은 이미 다문화국가나 마찬가지”라며 “어렸을 때부터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임을 알리고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교사들에게도 올바른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지윤 명지대 교수는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이주민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 뽑아 외국인 관련 분야를 담당하게 하면 사회적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의 구체적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증진보도팀(이세용·이한빛·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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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에서 촬영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모습. 사진=인권증진보도팀
서울 이태원에서 촬영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모습. 사진=인권증진보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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