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는 한국의 뿌리 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연령인구 부족과 고학력화에 따른 내국인의 구직 기피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루가 급한 기업들은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상당수 이주 노동자가 불법으로 취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이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중부일보는 4편의 기획보도를 통해 이주 노동자 유입이 가져오는 지역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살펴보고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짚어봤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상이한 이주민 정책을 펴고 있는 대만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이주민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달 21일 취재진이 찾은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한 공장의 내부 모습. 이주 노동자가 금속 도금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지난달 21일 취재진이 찾은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한 공장의 내부 모습. 이주 노동자가 금속 도금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양국 제조업 기반 수출지향형 구조
모두 내국인 고용 힘든 점 공통점
대만 이노자 대부분 제조업 종사
현지 노동부 "저출산·고령화 영향
부족한 노동력 이주 노동자에 의존"

 

한국과 대만 모두 제조업 기반의 수출 지향형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도체 등과 같은 첨단 제조산업뿐만 아니라 섬유, 금속 등 2차 산업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우위를 지닌다. 그러나 2차 산업의 특징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양국 모두 내국인 고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제조업 중심 수출 지향 국가’… 이주민 노동력에 의존하는 한국과 대만

우리 정부는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란 내국인을 고용하기 어려운 뿌리 산업과 지방 중소기업에 안정적으로 인력을 수급할 수 있도록 정부가 주도해 해외 인력을 지원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필리핀, 몽골, 태국 등 16개 아시아 국가와 인력 도입 양해각서를 맺고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추산 합계 88만 명) 중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비숙련 노동자(E-9비자)는 22만 9천476명(2023년 기준)으로, 대부분 제조업(18만5천234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대만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몽골 등 총 6개국과 협약을 맺고 해외 인력을 수급하고 있다. 매년 22만 명 정도의 이주 노동자가 들어오며, 올해 기준 대만 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78만여 명에 달한다.

업종별 고용 비율을 보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제조업 분야에 종사한다. 올해 8월 기준 대만 내 체류 중인 비숙련 노동자(73만9천496명) 중 47만6천903명이 제조업에 몸을 담고 있다. 대만 내 3D 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은 약 5만8천여 개(2020년 기준)로, 노동력 대부분을 이주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소 박사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제조업에 강점을 지닌 나라"라며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내국인 고용이 쉽지 않은 기업들이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력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대만 타이페이에서 취재진과 만난 라이 치아 젠 대만 노동부 산하 노동력재건운용처 분서장 역시 같은 대답을 내놨다. 그는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지속되면서 제조업 분야의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8월 29일 대만 타이페이에 위치한 토성공업지구 인근 거리의 모습.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이세용기자
지난 8월 29일 대만 타이페이에 위치한 토성공업지구 인근 거리의 모습.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이세용기자

한국 '정부 주도형' 고용허가제
정부 교육이수 등 요건 갖추면
채용희망 기업에 노동자 파견
정부심사통과 기업에서만 근무
고용절차 투명·고용안정 장점
외국인노동자·기업 정보 부실

■ 이주 노동자 고용 정책 상이… ‘정부 주도형’ 한국·‘민간 주도형’ 대만

우리 정부는 이주 노동자 고용을 위해 ‘정부 주도형’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근무를 희망하는 외국인은 산업인력공단이 지정한 자국 내 송출기관과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요건이 갖춰지면 공단은 채용을 희망하는 기업에 노동자를 파견하며, 최대 10년간 체류하며 근무할 수 있다.

반면 대만은 ‘민간 주도형’ 이주 노동자 고용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정부는 고용과 관련된 절차 중 비자 발급 과정 정도만 개입할 뿐 민간의 역할을 최대한 보장한다. 대만에서 근무하려는 외국인은 민간 인력 알선업체를 통해 취업을 모색해야 한다. 대만 이주 노동자는 최초 체류 기간 3년 계약을 맺은 뒤 업무를 시작하고, 계약이 만료된 후에는 고용주와 노동자가 협의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계약 연장기간은 업종별로 최장 12년에서 14년이다.

■ 상반된 특징… ‘투명성·안정성’ vs ‘소통원활·효율성’

한국과 대만은 이주 노동자 고용 정책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특징도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의 ‘정부 주도형’ 정책은 투명한 고용 절차, 이주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등이 장점이다. 반면 대만의 ‘민간 주도형’ 고용 정책은 고용주·노동자의 원활한 소통, 효율적인 인력 배치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일률적이고 공정한 선발 절차를 통해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고 교육을 이수하면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반면 대만의 고용 방식은 민간 알선업체를 통하기 때문에 고용 절차의 공정성은 상대적으로 빈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1일 취재진이 찾은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한 공장의 내부 모습. 이주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세용기자
지난달 21일 취재진이 찾은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한 공장의 내부 모습. 이주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정부 주도형 고용허가제의 또 다른 장점은 이주 노동자에게 고용 안정성을 제공하고 수수료 등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는 정부 심사를 통과한 기업에서만 근무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부담하는 수수료 등은 거의 없다. 대만의 경우는 이주 노동자가 자신의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이 생긴다. 이주 노동자가 소개비 명목으로 취업 전후 임금의 일부를 알선업체에 지불해야 한다.

대만 '민간 주도형' 이주민 고용
민간 알선업체 통해 구인·구직
최초체류 3년 계약·협의 후 연장
고용주·노동자 정보 데이터 축적
원하는 인력 적재적소 배치 장점

하지만 민간 주도형 고용 정책도 장점이 있다. 가장 좋은점은 고용주와 노동자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력 알선업체는 기업과 노동자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공유하고, 기업과 노동자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채용 및 취업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고용허가제가 소통 창구를 정부기관으로 제한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정보 공유가 원활하다.

반월공단 입주기업 한 관계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전달받는 이주 노동자 이력서엔 정보가 충분히 담겨있지 않다"며 "국내 입국 전 인터뷰 등도 진행되지 않아 노동자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노동자들도 업무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듣지 못한 채 입국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리핀 출신 이주 노동자 누네즈 메지(39) 씨는 "한국에 오기 전 회사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업무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며 "회사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면 내가 선호하거나 장점이 있는 업무에 지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주도형’ 고용 정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인력 배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미스매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알선업체에 축적된 고용 관련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하는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중부일보 취재진은 지난달 대만 타이페이 내 민간 인력 알선업체를 방문해 관계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해당 알선업체의 대표 피터 왕 씨는 "제조업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상당수가 필리핀 출신"이라며 "제조업 특성상 영어를 잘할수록 해외에서 들여온 장비나 도구를 쉽게 사용하고, 업무에 관한 소통도 편해 고용주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피터 왕 씨는 또 "가사도우미로 고용된 외국인은 인도네시아 출신이 많은데, 이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언어 습득 능력이 좋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며 "우리는 해외인력에 관한 축적된 데이터를 갖고 있으며 기업이 원하면 언제든지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세용·이한빛·김도윤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