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는 한국의 뿌리 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연령인구 부족과 고학력화에 따른 내국인의 구직 기피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루가 급한 기업들은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상당수 이주 노동자가 불법으로 취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이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중부일보는 4편의 기획보도를 통해 이주 노동자 유입이 가져오는 지역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살펴보고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짚어봤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상이한 이주민 정책을 펴고 있는 대만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이주민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안산 원곡·시흥 정왕·포천 송우리
각국 언어로 된 메뉴 안내판 즐비
지자체가 지원정책·축제 등 추진

안산시 다문화마을특구 거리(왼쪽 사진)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대만 타이페이 시멘 스테이션 인근 거리의 모습. 김도윤기자
안산시 다문화마을특구 거리(왼쪽 사진)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대만 타이페이 시멘 스테이션 인근 거리의 모습. 김도윤기자

한국과 대만 모두 소비 주체로서 이주 노동자의 역할이 작지 않다. 특히 이주민 유입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자주 왕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문화 상권이 형성됐다. 이는 침체된 지역상권을 활성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국적 관계없이 다문화 상권 형성한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16개국과 인력 수급 협약을 맺고 있는 만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취업을 위해 들어온다. 이들은 주로 공업단지나 산업단지 등에서 근무하며 출퇴근을 위해 인근에 거주한다. 다문화 상권 역시 이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형성된다. 경기도의 경우 안산시 원곡동이나 시흥시 정왕동, 포천시 송우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달 23일 취재를 위해 찾은 포천시 송우리 버스터미널 일대는 한눈에 봐도 다문화 상권임을 알 수 있었다. 식당들은 각국 언어로 된 메뉴나 안내문을 붙여놓았고 식료품점은 다양한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국내에 형성된 ‘다문화 상권’의 또 다른 특징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산시에 조성된 다문화마을특구가 대표적이다. 2009년 특구로 지정될 당시 원곡동에 등록된 이주민 수는 전체 주민의 40%에 달했다. 안산시는 이주민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과 브랜드 사업을 추진해 다문화 상권 특화에 성공했다.

장유경 안산다문화특구지원팀 팀장은 "안산시는 특구 내 149개 외국계 음식점을 기반으로 다문화거리 조성과 간판개선사업 등 다문화 인프라 구축사업을 추진했다"며 "세계민속축제, 음식 특화거리 조성 등 다문화 브랜드 특화를 위한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타이페이 '리틀 인도네시아'내에서 운영 중인 인도네시아 식당. 인도네시아 출신 사장 비비 씨가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대만 타이페이 '리틀 인도네시아'내에서 운영 중인 인도네시아 식당. 인도네시아 출신 사장 비비 씨가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대만, 리틀 필리핀 종교매개 형성
리틀 인니 주말 수천명 방문 북적
양국 모두 이노자가 소비 주체로

■ ‘리틀 필리핀’·‘리틀 인도네시아’… 국가별 특징 뚜렷한 대만

우리와 달리 대만은 국가별 특징이 뚜렷하다. 타이페이 시내엔 특정 국가 이름이 붙여진 두 개의 다문화 타운이 존재한다. ‘리틀 필리핀’과 ‘리틀 인도네시아’가 그곳이다.

타이페이시 중산구 동쪽에 위치한 ‘리틀 필리핀’은 종교를 매개로 형성됐다. 인구 80%가 가톨릭 신자인 만큼 필리핀 이주민들은 대만에서도 성당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세인트 크리스토퍼 성당을 중심으로 약 1km 거리에 음식점, 식료품점, 미용실 등 필리핀 출신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리틀 필리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로진 씨는 "필리핀 출신 이주민들은 주말이면 대부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며 "이주민들은 미사를 마치고 필리핀 식당에 함께 가거나 필리핀산 제품 등을 구매하며 여가를 보낸다"고 말했다.

‘리틀 필리핀’과 달리 ‘리틀 인도네시아’는 교통 편의성 때문에 형성됐다.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동쪽에 위치한 리틀 인도네시아는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어 타지역에서도 방문이 용이하다.

‘리틀 필리핀’에 비해 작은 규모이며, 상점 대부분이 음식점인 것도 특징이다. ‘리틀 인도네시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비비 씨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민들은 이곳에서 함께 음식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며 고향의 향수를 달랜다"며 "주말이면 어림잡아 수천 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포천 송우리의 한 버스 터미널 앞. 이주 노동자들이 승하차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지난달 23일 포천 송우리의 한 버스 터미널 앞. 이주 노동자들이 승하차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 "외국인 손님이 절반 이상"… 이주민이 지역 상권 견인차 역할

한국과 대만 모두 내국인 고용이 힘든 지역의 기업들은 이주 노동자로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는 순기능으로도 작동해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포천시가 대표적이다. 섬유와 가구를 다루는 크고 작은 공업단지 10여 개가 위치해 있으며, 이주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면서 인근 상권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3일 찾은 포천 송우리 거리는 경기북부의 중소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중국이나 동남아 음식점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내국인과 이주민이 뒤섞여 있었다.

송우리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 "외국인 손님이 없으면 송우리 일대 상권은 다 망한다"며 "가게마다 외국인 고객을 끌어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대만의 다문화 타운은 국가별 색채가 뚜렷하다. 리틀 필리핀과 리틀 인도네시아처럼 특정 국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타운을 형성하면서 그곳만의 특색있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생겨났다. 이로 인해 대만 내 체류하는 이주민 뿐아니라 해외 관광객들도 들르는 코스가 됐다. 이들이 단체로 이주민 타운을 방문해 기념품을 구매하거나 다양한 음식을 즐기면서 이주민 타운은 일종의 관광지로서 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다.

치아 홍 리우 타이베이시 노동부 처장은 "이주민들이 해당 지역에서 소비를 주도하면서 지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이주민 타운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어 관광지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아 홍 리우 처장은 이어 "리틀타운의 국가별 고유 음식 문화가 대만의 음식문화와 접목되면서 새로운 음식들이 탄생하고 있다"며 "이를 지원해 타이페이시의 문화관광상품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3일 포천 송우리에 위치한 저가 제품 전문 잡화점 내부 모습. 김도윤기자
지난달 23일 포천 송우리에 위치한 저가 제품 전문 잡화점 내부 모습. 김도윤기자

■ 양국 모두 내국인 발길 뜸한 ‘다문화 타운’

이주민들이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어두운 면도 나타나고 있다. 타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같은 국가 출신이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면서 내국인이 기피하거나 자주 찾지 않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안산 다문화특구를 방문한 취재진은 내국인을 만나기 어려웠다. 가판대를 두고 장사를 하는 상인은 물론 음식점에서도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안산시가 지난 2021년 조사한 ‘상호문화도시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연구’에 따르면 다문화특구를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고 답한 내국인 수가 50.2%에 달했다.

대만의 상황도 비슷하다. ‘다문화 타운’ 내 상점들은 내국인보다 동향의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리틀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이곳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출신의 이주민들"이라면서 "대만인들이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전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아직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다문화 사회’로 전환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문화적 이질감이나 갈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용·이한빛·김도윤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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