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는 한국의 뿌리 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연령인구 부족과 고학력화에 따른 내국인의 구직 기피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루가 급한 기업들은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상당수 이주 노동자가 불법으로 취업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이로 인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중부일보는 4편의 기획보도를 통해 이주 노동자 유입이 가져오는 지역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살펴보고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짚어봤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상이한 이주민 정책을 펴고 있는 대만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이주민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주 노동자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이들은 생산부터 소비까지 지역 경제를 견인하고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 유입이 증가하면서 사회 구성원 간 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안정적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선 고용주와 갈등을 유발하는 고용허가제의 역기능을 제거하고 내국인과 이질화되는 다문화 상권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산 반월공단(사진)에는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김경민 기자
안산 반월공단(사진)에는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김경민 기자

■ 딜레마에 빠진 고용허가제...‘노동자 권리 제약’ vs ‘최소한의 안전망’

우리 정부는 이주 노동자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고용허가제 개편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개편안에는 고용과 관련된 정책만 있을 뿐 이주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이 부족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노조 사무실에서 중부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노조 사무실에서 중부일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없고 계약 해지나 갱신의 권한도 없다"며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고용허가제는 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를 유발하고, 노동자 기본권 침해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며 "해외 인력 선발부터 도입, 관리, 육성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선진화된 이주민 관리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만큼 고용허가제를 유지하고 기업의 권리를 더 보장하는 방식으로 현행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산 반월공단의 한 중소기업 임원은 "(지금도) 근무지를 떠나는 이주 노동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린다"며 "지방이나 소도시에 위치한 기업들은 이주 노동자가 떠나면 새로운 인력을 고용하기 어려운 만큼 초기 1~2년 정도는 이직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박영범 한성대학교 명예교수가 판교의 한 카페에서 중부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지난달 7일 박영범 한성대학교 명예교수가 판교의 한 카페에서 중부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는 "이주 노동자의 이동권을 제약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라며 "고용허가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 경제가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주 노동자에게 사업장 및 지역 간 이동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쏠림 현상이 진행될 것"이라며 "지역 경제는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전문가들 "고용허가제 ‘정부 주도’ 유지하되 ‘민간 주도’ 장점 받아들이자"

전문가들은 고용허가제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선진화된 정책인 만큼 ‘민간 주도형’ 고용 정책의 장점을 받아들여 절충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박영범 교수는 "‘민간 주도형’ 고용 정책은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소통이 원활하고 미스매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노동자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담케 하는 등의 부작용도 존재한다"며 "기업과 노동자의 정보를 공유하는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실무는 민간 업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4일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무실에서 중부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지난 8월 14일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무실에서 중부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기자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주 노동자의 고용 관리는 중앙정부가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제도운영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채용과 관련해 고용주에게 자율권을 부여해 제도 자체를 신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고용주가 노동자를 먼저 선발하게 한 다음 비자 발급 시 정부가 개입을 검토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지역 경제 활성화 위해 이주민 정착률 높여야… 내국인과 어우를 수 있는 상권 조성도"

이주민 유입이 증가하는 만큼 국내 소비 진작과 특색있는 상권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이주 노동자의 소비 행태를 분석한 결과 임금의 60%는 본국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40%가량을 국내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국인 노동자 1분위 소비지출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달 23일 포천 송우리 버스 터미널 인근의 한 미용실. 미용사가 이주민 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김도윤기자 
지난달 23일 포천 송우리 버스 터미널 인근의 한 미용실. 미용사가 이주민 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김도윤기자 

이태규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민들이 국내에 정착하게 되면 소비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들의 정주 여건을 개선해 정착률을 높일 수 있다면 해외 송금액을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원 부연구위원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오는 재화와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의 장을 지역에 조성해야 한다"며 "이 같은 공간이 마련되면 문화의 다양성이 제고되고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세용·이한빛·김도윤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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